공간 사이 흐르는 시간

2021. 4. 1. 12:21ArtBook

약간 겉도는 이야기, 한지에 분채, 30x30cm 2015



가만히 시계를 바라보고 있으면 흘러간 시간이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기억이 있다. 지나버렸지만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은 기억들. 기억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통해 현실과 주변을 인식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개인의 태도는 중첩된 경험과 습관들이 오랜 시간 쌓여서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태도는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일관성을 어느정도 유지한다.

시계 바늘은 가다 말고 거꾸로 돌아간다. 시간이 흐르는지 아닌지 모르는 어느 느긋한 오후, 점심과 저녁 사이. 특별한 약속도 없고 급하게 할 일도 없어서 들어간 해가 잘 드는 카페. 2층 통유리 넘어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기도 하고, 손에 닿는 대로 들고나온 소설책을 읽어본다. 살짝 지루해 지면 휴대폰도 뒤적인다. 그 순간 햇살이 눈부셔 안경을 벗고 뿌연 시야를 두리번 거린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묘한 상태가 된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하지만 이내 익숙해진 시야로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경험은 어느 특정 장소가 아니라도 생기곤 한다. 그런 순간들은 여지없이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 그래서 그런 기억은 순간이지만 몇번이고 반복되는 기시감을 갖는다. 나는 그 찰나마다 유사한 감동을 체험한다. 얼마 되지 않는 순간이지만 유사한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 ‘나’라는 개인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 대한 인식의 일관성이 유지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일상의 순간들을 내 작업의 기본이 되는 미적 체험이라 여긴다. 그래서 일상의 순간들은 온통 나만의 것이라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느꼈는지 모르겠다.

일상이란 개념은 일요일이나 축제일과는 반대로 평일이라는 개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그것은 노동과 외부, 획일성의 습관, 소외의 영역을 포괄한다.1 또한 한자어 ‘日常’이란 늘 되풀이 되고 반복되는 하루하루 라는 뜻 이다. 즉, 이런 반복의 결과. 일상은 ‘관례화 된 것’ 또는 ‘습관’을 가르키기도 한다.2 일상은 반복되는 습관적인 삶의 생활상을 말하며, 실제 살아가는 공간 뿐 아니라 살아가는 이의 의식도 포함된다.

현대의 일상을 통해 단순히 획일화된 스테레오 타입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일상이나 현대의 일상 모두가 그 시대의 생활상을 담고 있고, 일상을 토대로 평범한 주관적 태도가 반영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조선후기 풍속화가 일상을 풍자하고 해학이 넘치는 그림으로 서민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듯이, 현대인의 일상도 미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일상은 그 구체적인 개인이 몸담고 있는 사회 전체의 압축된 상징이기 때문이다.3


-참고-

1. 볼프하르트 헹크만, 콘드라 포터, 김진수 역, 『미학사전』, 서울 : 예경, 1988, p.287.
2. 최종욱, 『일상에서의 철학』, 서울 : 지와 사랑, 2000, p.171
3. 박재환, 『일상생활에 대한 사회학적 조명』 , 『일상생활의 사회학』, 한울, 1994, p. 39-40.

'Art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케치, 에스키스  (0) 2021.04.04
기억하는 그림, 나타내는 방법  (0) 2021.04.03
도시풍경화  (0) 2021.03.31
그림을 그리는 습관  (0) 2021.03.30
여행을 기억하는 기술  (0) 2021.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