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3. 19:43ㆍArtBook
기억하는 그림과 나타내는 방법
그림 한 폭에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특정한 날의 공기와 빛, 냄새, 소리 등등. 평면상에 색감과 구도, 빛과 그림자, 선과 면의 조합, 물감의 번짐과 마티에르가 저마다의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어떠한 특징을 더 부각시켜주냐에 따라 겉으로 나타나는 그림의 화풍을 짐작 할 수 있다.
또는 주제와 소재에 따라 그림의 특성을 구분하기도 한다.
저의 작업을 굳이 나누자면 재료적, 기법적으로 채색화다. 내가 쓰는 채색 재료는 아교와 호분, 분채, 석채(색을 띈 광물의 가루), 그밖의 수성 채색물감이다. 보통 한국화의 채색화는 수묵채색화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화의 채색화 연원은 불교 탱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수묵채색화의 채색은 ‘수묵담채(水墨淡彩)’라고 해서 먹색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옅은 색을 칠하는 기법이다. 보통 한국화라고 많이 알려진 수묵산수화에 약간의 색을 가미한 작품들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조선시대 생활상을 보여줄 때 많이 예로 드는 풍속화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수묵담채는 얇은 화선지에 먹을 중심으로 그리는 그림이므로 색채가 진하게 올라가는데 재료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일필휘지의 기운을 느끼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다.
제가 말하는 채색화가 불교 탱화에 가깝다는 말은 내용적인 부분 보다 기법적인 부분에서다. 조선시대 유교 문화가 성행하기 이전의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교려시대 탱화는 채색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수월관음도를 보면 세월이 많이 지났음에도 살색의 진한 표현과 옷감의 화려한 색상은 채색화 기술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당시 채색은 주로 한지가 아닌 비단에 그렸기 때문에 채색의 난이도가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색의 다양함이라고 하면 단청을 들수 있다. 청, 적, 황, 백, 흑 오방색을 기본으로 배합하여 사용한다. 단청은 천연안료에 아교에 개어서 칠한다. 지금은 천연 안료가 아닌 화학안료를 쓴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단청이 내 작업과 가장 가까운 채색방법이라 생각한다.
안료를 아교(접착제)로 개어 꾸덕하게 만든 물감을 물과 섞어 화선지에 바르는 채색방법이다. 여기서 중요한것이 아교의 농도인데 농도를 잘못 맞추게 되면 채색된 가루 물감이 가루가 되어 떨어지거나, 굳으면서 갈라지게 된다.
(채색화에 사용하는 재료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서 ^^)
돌아와서, 그림은 작가의 메시지를 담아내게 되어있다. 나는 주로 지나간 추억을 꺼내어 그날의 공간이나 사물을 채색화 기법으로 화면에 나타냔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비슷하게 공유되는 기억들을 보며, 그 순간을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 경험과 이야기들 이지만 그것이 어떤이에겐 나에게 있었던 일을 소환해 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화학적이고 계산적인 그림의 구성 위에 그런 감정을 전달하는 장치를 녹여내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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